2009년 피렌체.겨울. 우물밖.설레임

이번 페라가모 바잉 출장을 가기 전부터 컨디션이 좋질 않았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더니 침넘기기가 불편해지더니 급기야 출발하는 날 아침에는 콧물도 흐른다.

이렇게 네 번째 피렌체 방문.


바잉은 힘들고 몸도 힘들고 피렌체를 카메라에 담을 여유도 없고...

DHLR을 힘들게 들고 갔는데 모라도 찍어야 겠다 싶어 호텔 창을 열고 매일 같은 곳을 보고 찍는다.

피렌체는 이런 곳이다. 매일 같은 곳을 찍어도 매일 다른 느낌. 카멜레온 같은 곳.

밤.낮.새벽...이렇게 다른 빛깔.

바잉 3일째. 끝났다는 홀가분함에 카메라를 들고 무작정 거리로 뛰쳐나온다.

위 사진의 뽀숑한 아기 구름이 사랑스러워 계속 셔터를 눌러댔다.

아. 깨물어주고 싶을 만큼 사랑스러운 구름.

이제 저녁이 내린다. 피렌체의 마지막 밤이 아쉽다.

베키오 다리 근처는 이렇게 늘 관광객들로 빽빽하다.
이 사진이 개인적으론 참 좋다. 연말의 분주함이 가득하고 사람 내음이 물씬이기에.


4 the first Time 습작 &

사람에게 처음이란 정말 무엇일까.

다른 사람들에게 이 질문을 많이 해보지 않은 난 일반적인 답은 잘 모르겠다.

나에게 처음은 그런 것인 듯.

"For the first time" 이기 때문에 그 기억이 너무나 강렬하고 그래서 그것에 익숙해진 이후에도 그 강렬함 때문에 처음을 계속 기억하게 되는 것.

그런 것인 거 같다.



베트남 쌀국수를 처음 먹었을 때,
숙주나물에 고수에 레몬까지...너무나 낯선 맛이었고 그 맛은 나를 당황스럽게 했더랬다.
대학교 2학년, 베트남이란 나라도 친근하지 않았던 그 때, 그 낯설고 시큼한 맛은 베트남을 더욱 멀게 느끼게 했었는데....
비오는 날마다 베트남 쌀국수의 국물을 애타게 찾게 된 지금 그 낯선 기억은 늘 내 한 켠을 차지하고 있다.



Camonbert 치즈를 처음 프랑스를 다녀온 사람에게 선물로 받고는 이 썪어가는 냄새와 파우더를 묻혀놓은 듯한 하얀 껍데기는 뭔가 했었다. 촌스럽게 보이진 않을까 싶어 맛있다고는 했었지만(맛이 없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냄새나는 딱딱한 껍데기 안의 흐물흐물하고 고소한 치즈는 내게 분명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제 페라가모 바잉으로 피렌체에 가면 지겹도록 먹게 되는 Camonbert.

먹을 때마다 그 처음을 기억하게 되는 건 왜일까? 이번 출장에서 돌아올 때는 기어이 그 치즈를 하나 사왔고 오는 길 내내 온 세상에 썪은 냄새가 나는 것 같아 민망했더랬다. 그럼에도 그 치즈를 꼭 사오고 싶었던 것은 왜일까.

기억이 내게 가지는 의미가 그런 것일까...

먹는 것에만 강렬한 첫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ㅋ



버버리 위크엔드 향수.

바로 나의 첫 향수이다.

대학교 2학년 때던가. 아마도 누군가의 향수 냄새를 진하게 맡고는 난생 처음으로 향기에 취했던 적이 있다.
그것이 향수 냄새임을 알게 된 거 조금 더 후였던 걸 보면 지독히 순진했던 걸까.
선물 받은 버버리 위크엔드 향수를 통해 첫 나의 향기를 가지게 되었고 그 따뜻하면서도 달달한 향이 참 좋았었다.
얼마전 매장에서 우연히 다시 그 향을 맡았을 때, 향과 맛이란 그런 걸까. 난 10여년 전으로 돌아가 있었다.


기억이란 이토록이나 끈질긴 것일까?

시간이 흐름에 따라 하루하루 잊어가며 사는 것인데, 이렇게 영원히 잊지 않을 "For the first time" 기억들은 무어라 말인지...


과천 갤러리 까페 봄. 숨.고르기


얼마만인가.

도시를 떠나 살짝이나마 조인 숨통을 터보는 것이.

과천만 가도 나무가 보이고 답답하던 숨이 쉬어진다.

인덕원 근처의 갤러리 까페 봄. 호기가 유명하다 하여 오래전부터 가보고프던 그 집이다.

다행히 마당에 떠나기를 멈칫하는 가을의 깊디 깊은 조홍색이 남아있다.

박인로의 시조가 떠오른다.

반중조홍감이 고와도 보이나다
유자 아니라도 품은직 하다마는
품어가 반길이 없으니 그를 섧워하노라

작년 가을 식탁에 조홍감 하나를 놓고 간 엄마가 빈 종이에 그 시조와 내게 주고 간다던 가을 한 토막이 떠오른다.

별 이유도 아니다.

단지 아파트가 아닌 가정집이라는 것. 눈길 닿는 곳에 나무의 푸릇함이 있고 겨울의 굳은 땅이 느껴진다는 것.

그게 바로 숨이 쉬어지는 이유.

12시 경. 아직 아무도 자리잡지 않은 이층 안쪽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고픈 배를 부여잡고 너무 급하게 먹어버려 사진도 남기지 못했지만 이 곳의 호기 샌드위치는 정말 맛있었다.

무엇보다 신선한 빵. 바삭한 듯 하면서도 부드럽고 가볍게 씹히면서도 씹히는 맛이 있는....(ㅎㅎ 미식 평론가도 참 힘든 일이겠구나를 새삼 느낀다. )

시간이 참 조용히, 빨리도 흐른다.

필리핀 출신의 복식 영웅, 파키아오의 얘기를 나눈다.

필린핀 빈민가 출신인 그가 복싱계의 영웅을 넘어 필린핀의 정치판을 바꿀 꿈을 꾸고 있는 그를.

저벅저벅 밟히는 가을을 밟는다.

아...이젠 겨울을 맞을 준비가 되었나 보다.



갤러리 까페 봄

02-502-0606
경기 과천히 갈현동 354-3


2009 Nov 만남 1 우.리.만.남


뉴욕 파슨즈 시절 나의 베프였던 대만 아이. Li-Cheng.

그녀가 뉴욕을 떠나 타이완으로 돌아간 이후 한번도 보지 못했으니 몇 년 만일까? 아마 적어도 4년은 되었을 것이다.

정말 뜸하게 MSN에서 만나는 것 외엔 그저 잘 살고 있을 꺼라고 믿고 있었을 뿐 정신없이 쳇바퀴를 돌리는 것 같은 30대를 살며 아마도 당분간은 그녀를 볼 수 없을 꺼라 생각했었다.

가끔 메신저에서 만나면 우리는 패션이란 걸 하는 삶이 얼마나 힘든지를 얘기했고 계속 이 길을 가는 것이 맞는 걸까에 대한 고민을 공유하곤 했다. 몇달 전쯤 많이 지친 듯한 목소리의 그녀는 회사를 그만두었다 했었고 다 잊고 이것저것 배우고 있다며 훨씬 살만하다 했었다.

그런 그녀가  갑자기 서울로 날라왔다. 그녀의 동생 TIna와 함께.

11월. 내겐 그렇게 기억될 것 같다. 재.회.의 달.
인사동 쌈지길에서. 리첸과 티나.

많이 드라이해져 버린 나와는 달리 리첸은 여전히 작은 디테일에 관심을 기울이고 감탄을 한다. 


여전히 갤러리 가는 것을 즐겨 그녀 덕분에 아주 오랜만에 인사동 갤러리들을 들러 한없이 드라이해진 내 감성을 살짝 적실 수 있었다. 색감이 내 그리움 어딘가와 맞닿아 있던 함수연 화가의 작품이 기억에 난다.


아이...그녀는 아직도 이렇게 사랑스러운 그림 엽서를 만들어낸다.

내가 부러워했던 그녀의 아기자기함. 디테일을 멋지게 살려내던 그 능력... 그녀를 다시 만나 행복하다.

쌈지길의 까페에서. 먹은 한국 음식 이름을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리첸.

리첸. 나의 사진도 한 장 찍어주다. 햇살이 정말 아름다웠던 날.

인사동에서 삼청동까지 걸어갔다.

겨울이 없는 타이완에서 온 두 아이는 덜덜 떨만큼 추워하더라..ㅎ

삼청동 단풍나무집에서 천겹살과 우삼겹으로 저녁을 먹다.

4년만인지 5년만인지 잘 모르겠지만 우린 친구가 맞나보다. 전혀 낯설지 않은 느낌. 5년의 gap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어제 본 듯한 그 느낌.

언제 다시 보게 될까? 내년에 함께 휴가를 가자 했지만 어떻게 될 지는 잘 모르겠다.

또 한번 5년이 지나야 보게 될 지도 모를 일.

하지만...그 때도 이렇게 어제 본 듯한 그런 낯익음으로 만날 테니 걱정하지 않으려 한다.

여전히 hyper한 그녀의 목소리. 작고 예쁜 것들에 감동하는 그녀의 마음과 눈....벌써 그리워지려 하네.


London 가을 가다 우물밖.설레임

10월의 마지막 날, 어제는 하루 종일 해가 들지 않은채 어둠이 가득차 장대비만 쏟아지더니 거리 가득 흩날린 낙엽이 발에 치인다.

이렇게 2009년 가을이 넘어가는구나.

10월 초 쯤이던가.. 막 가을이 느껴질 무렵, 신랑에게 눈물로 호소를 했었더랬지.

다른 계절은 몰라도 가을만은, 정말 가을만은 내가 눈물나게 아쉬워하는 계절이니 이 가을엔 잊지말고 나와 함께 가을을 느껴야 한다고... 다른 계절엔 나에게 무관심해도 이해할 수 있지만 가을만은, 정말 가을만은 안된다고 투정을 부렸더랬지. 결국은 골프 중계가 걸리는 바람에 신랑은 주말도 없는 가을을 보내고 있는.. 그는 알까? 내가 투정없이 2009년 가을이 끝나가는 것을 담담히 응시하고 있는, 그럴 수 있는 이유...

그건, 짧은 이틀이란 시간이지만 런던의 깊어진 가을을 가득 가슴 속에 담아 왔기 때문이다.


몇년전에던가 벌써 한 6년 전인가...2003년 혹은 2004년인가보다. 런던 세인트 마틴(Saint Martins)에서 1년 동안 패션 디자인을 배워보려 뉴욕에서 겁도 없이 날아갔던 때가. zone 3인 Tooting Broadway 기숙사에 머물던 런던 안개 만큼이나 아스라한 기억, 그리고 정말 지독했던 외로움.

프랑스 깐느 면세 박람회 출장 후, 런던을 한번도 못가보셨다는 이사님 덕분에 아스라한 런던의 그 기억, 다시 찾으러 갈 수 있었다. (10/22~23)

고민 끝에 잡은 호텔은 Russell Squre garden 바로 앞 Hotel Russell.

Hotel Russell , 1-8 Russell Square, Bloomsbury, London, WC1B 5BE, UK





1900년에 찰스 돌이 지었다는 빅토리아 시대의 대형 호텔이 지금까지 남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가?!! 붉은 색 테라코타의 이 건물 서쪽에 패버 앤 패버 출판사가 있었다 하는데 여기서 T.S.엘리엇이 1925년부터 65년까지 작품을 썼다고 한다.

런던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은 이런 게 아닐까? 거리 거리마다 역사의 스토리가 담겨있고 아직도 그 스토리를 느낄 수 있다는 것.

hotels.com 통해서 $220불 선에 single 룸 예약. 겉의 고풍스럽고 화려한 느낌과는 다르게 심플하고 모던한 룸이 마음에 든다.


호텔에서 도보로 3분 거리인 Russell Squre Station. 맨들맨들한 붉은 색 대리석 같은 느낌. 묘하다.

Piccadilly라인으로  Piccadilly circus까지 세 정거장으로 center에서 가까우면서도 한적한 느낌이 런던에 오는 사람들에게 이 동네를 추천하고 싶은 이유이다. 여기저기 Bed & Breakfast부터 상당한 크기의 호텔들까지 숙소 초이스가 다양한 듯. 아. 대영박물관도 걸어서 10분거리에 있다.




아...런던의 가을.

Russell Square Garden 곳곳에 가을 속에 흩어진 사람들. 아이들의 웃음. 마치 그곳이 원래 자리였던 듯 너무도 잘 어울리던 자전거 한대. 공원 노천 까페에서 마신 2파운드 가량의 까페 라떼 한잔의 여유.
잔디에 앉아 낮아진 시야로 바라보니 또 다른 세상.

서울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그 느낌. 시간이 멈춰버린 느낌. 세상은 흐르고 나는 멈춰버린 섬이 되어 버린 느낌.

나는 그렇게 깊은 가을의 쉼표를 찍고 있었다.





6년 전에 보았던 그룹 Queen을 다룬 뮤지컬, We will Rock You가 아직도 공연이 계속되고 있었다. (Tottenham Court Road 역)
이렇게 긴 시간 동안 한 공연이 계속될 수 있다는 것, 지속적으로 관객이 찾아온다는 것. 너무나 부러운 일이 아닌가!



Tooting Broadway 기숙사에 살 때 같은 층에 살던 동생 지혜를 만났다. Royal College of Arts에서 6년 전에도 그랬듯 아직도 미친 듯이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그녀. 달라진 것이 있다면 19살 그녀가 이미 이십대 중반이 되었다는 것.

런던의 쌀쌀한 기운을 느끼며 Russell Square 근처 노천 까페에 앉아 밤이 깊어지도록 우린 Art라는 것이, Design이란 이 길이 얼마나 암울하고 기인 터널같은 것인지를 서글프게 얘기했다. 후회하는 듯, 다른 길을 아쉬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린 알고 있었지. 그런 서로의 넋두리가 어딘가 마음 속 깊은 동질감을 주고 그렇게 서로를 위로하고 있음을.

무얼 위한 것이든 미칠 수 있음이 아름답구나.

지금 나, 2009년 가을을 넘어서며 미칠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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